정부재정

직장인 입장에서는 똑똑하지만 게으른 사장님이 최고다. 회사는 잘 나갈 것이니 안심할 수 있고 상사 눈치 덜 보니 직장 생활이 편하다. 반면 멍청한 보스가 부지런하기까지 하면 최악이다.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같은 이치로 집권자가 무능하면 국민이 고생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회사건 정부건 큰 조직의 보스가 무능한 경우 몇 가지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데 크게 보면 비겁하거나 용감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정도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자신의 약점을 이해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정부는 어떨까. 다양한 이념, 계층, 직업, 지역의 국민을 동시에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어떤 정책을 펴도 비판의 소리가 들릴 것이다. 유능한 집권자라면 이를 자신을 되돌아볼 계기로 삼는다. 그런데 무능한 집권자는 조금만 반대 목소리가 나와도 발끈하고 나선다. 그러다 반동이 세지면 슬그머니 뒤로 숨어 버린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태도다. 틀리면 바꾸면 되고 욕먹으면 참아야 하는 것이 국민의 심부름꾼이 할 자세이다. 물론 정치적 줄다리기를 포기하고 순진하게 끌려다니라는 말은 아니다. 제발 숨지는 말아 달라는 것이다. 특히 통계 뒤에 숨는 것은 정말 곤란하다. 이는 반대의견에 직접 대응할 때 발생하는 정치적 비용을 피하려 교묘하게 위장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중앙은행의 독립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통화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부 활동이 투명한 선진국이라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분리할 이유가 없다. 이 둘은 어차피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효과를 높이려면 함께 고려해야 한다. 정부 관료들이 핵심 변수인 금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통화량 추이를 무시하면서 재정수지를 관리하기는 어렵다. 중앙은행 역시 재정수지나 무역수지처럼 시중 유동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을 고려하며 통화정책을 편다. 문제는 경제가 어려워 정권이 흔들릴 때 돈을 찍어 당장의 위기를 넘기려는 유혹이 커진다는 점이다. 정치로부터의 독립이 관료로부터의 독립보다 더 중요한 이유이다.

1980년대의 남미국가들은 전염병처럼 경제위기를 겪었다. 인접 국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적자가 지속되는 방만한 재정 운영이 무책임한 통화발행으로 이어진 것이 핵심 원인이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총공급과 총수요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증가해야 한다. 한 나라의 생산 능력이 하루아침에 급변하기는 어렵지만 총수요를 결정하는 소비와 투자, 그리고 해외 수요는 변동성이 있다. 수요가 부족하면 성장률이 떨어지므로 정부는 재정적자나 통화발행 같은 수단으로 대응한다. 그런데 총수요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낮은 경쟁력으로 인한 무역적자처럼 구조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면 사정이 다르다. 국채를 발행하면서 재정적자를 오래 지속하기 어려우니 돈을 풀어 적자를 메우려 든다. 급기야 물가가 폭등하며 경제는 무너진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이런 현상은 무능한 정권이 집권한 곳이라면 거의 공식처럼 나타난다.  

그런데 중앙은행 독립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이곳에서 국가 통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GDP(국내총생산)나 무역수지 같은 익숙한 국민계정 개념들의 생산지는 한국은행이다. 그런데 이런 통계를 누군가 조작하려 든다면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우리는 그런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률 통계는 안 믿는 전문가가 많다. 중앙은행 말고도 통계를 만들고 관리하는 정부 기구가 여럿 있다. 미국 같은 경우 상무부 산하에 독립적인 통계국(Bureau of Economic Analysis)이 있다. 미국에서 교수로 있을 때 이곳 사람들과 일한 적이 있는데 세속적인 권력과는 거리가 있어도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외부 압력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의 통계청은 가끔 정치 외풍에 흔들릴 때가 있다. 

통계를 아무리 객관적으로 만들어도 그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어느 정권이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통계를 포장하고 싶겠지만 그래도 선을 넘어가는 것은 곤란하다. 청년이나 노인들을 위한 단기 일자리를 예산으로 만드는 것이 복지의 차원에서는 나쁜 정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무슨 대단한 일자리 창출이라도 한 듯 홍보를 하는 것은 통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다. 물론 무능한 집권자가 숨을 곳은 통계 말고도 많다. 부하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법망의 구멍을 적절히 이용하기도 한다.

무능한 정권이 뒤로 숨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용감할 때도 많다. 시도 때도 없이 대중 앞에 나타나 얼굴 비추면 자신의 성실함이 정치 점수로 이어진다 여기는 집권자들도 많다. 공무원들을 단순한 부하직원 취급하며 들볶으면 국민들이 환호한다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좋은 회사를 보면 누가 간섭 안 해도 일이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다. 직원들의 자율성이 높으니 창의성도 살아난다. 사장은 가끔 회식 때나 나타나 돈 봉투 날리고 간다. 물론 위기와 같은 특별한 상황이라면 사장이 작업복 차림으로 진두지휘하는 게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회사 대표가 시도 때도 없이 근무 현장에 출몰하면 다들 움츠린다. 이런 사람은 정작 리더십이 필요할 위기 때는 살짝 뒤로 숨어 부하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정부같이 거대한 관료조직일수록 경직성에 따르는 비효율이 있기 마련이다. 한 공간에서 사장과 직원이 함께 근무하는 작은 회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따라서 공무원들의 작업 효율을 높이려면 의도적으로라도 자율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 좋다. 그런데 한국의 관료들은 복지부동 같은 용어로 조롱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영혼이 없다는 얘기까지 듣는다. 이것이 모두 조직 구성원들 탓일까. 위에서 지나치게 간섭을 해대면 움츠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부터도 그럴 것 같다. 더구나 집권자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관료조직을 이용하려 들면 공무원들은 단순히 엎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지를 땅속에 박고 자신을 감추는 ‘낙지부동’의 자세로 변신한다. 이런 경직성이 누적되면 정부 생산성은 떨어지게 된다. 

아무리 전문가나 정치인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나라 발전도 없다. 노동개혁이나 재벌개혁도 좋지만 정부개혁도 중요하다. 가끔은 과감한 개혁을 통해 관료 조직의 쌓인 병폐를 걸러내야 대다수 공무원들은 신나게 일할 수 있다. 물론, 어떤 개혁이건 평시에는 하기 힘들다. 어쩌다 위기가 오면 이때가 기회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노동자와 서민의 피눈물을 제물 삼아 개혁을 했다고 하지만 정작 정부주도 경제운영이 지속되며 쌓여온 정부 내 병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당장의 위기 극복을 위해 공무원들의 조력이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기회가 있었다. 당시 미국이 위기의 진앙점인데도 우리 경제가 많이 흔들렸던 것은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지속된 정부주도 경제 운영의 부작용이 누적된 탓이 크다. 관치금융이란 말이 의미하듯 정부의 월권으로 금융시스템의 자율성이 훼손됐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외환보유액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 정부 내의 고질적 병폐도 손보아야 했던 것 아닌가. 

다시 10년이 지나 새로운 형태의 먹구름이 끼고 있다. 당장 우리 경제에 구멍이 생긴 것이 아니라 미국 주도의 글로벌리즘이 무너지면서 ‘각자도생’으로 상징되는 생존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시장경제의 보루, 신자유주의의 산파였던 미국조차 큰 정부를 수반하는 산업정책 구상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지난 10여 년 몸 사리는 일에 더 급급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살아야 좋은 정부가 되고, 그들을 살리려면 좋은 정치가 앞서야 한다. 집권에 급급해 정치공학이나 펼치는 세력이 아니라 겸손하지만 비겁하지 않은 세력을 언제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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